기사 출처 : 조선일보
기사 링크 :https://www.chosun.com/special/special_section/2022/04/26/L34KZZ6PP5HNBM2UEHJOXAUNHM/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류(人類)는 많은 질병을 극복해 왔다. 암은 더 이상 사형선고를 의미하는 질병이 아니다. 지난 2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도 끝을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유독 더디 발전하는 치료 기술 분야가 있다. 바로 뇌·정신 건강 영역이다. 신약 개발 분야 중에서도 개발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들면서 실패 확률 또한 높아서인지 지난 20여년간 치매, 파킨슨, 뇌졸중, 자폐 등 퇴행성 뇌 질환이나 발달장애를 위한 신약 개발이 실패했다. 많은 제약회사가 중추신경계 약물 개발을 포기하는 상황에 ‘디지털 치료제’가 각광받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인체 내(內) 화학반응을 유발하는 전통적인 의약품과 다르다. 근(近)적외선이나 초음파, 전기나 자기와 같은 물리적 자극을 통해 뇌파를 조절하는 등 전기생리적 반응을 유도하는 치료 기술이다. 인지 훈련이나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소프트웨어도 디지털 치료제로 분류된다.
의료기관에 방문하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모니터링이 가능한 웨어러블 장비들이 꾸준히 개발돼 왔는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병원 방문이 제한되면서 비대면 원격 의료의 수요와 맞물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모니터링이나 치료·재활 기술도 급격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의료 전문가의 관심을 받고 있는 기술은 중추신경계 디지털 치료제인 ‘광신경조절기술(Photoneuromodulation)’이다. LED를 이용한 광치료 기술은 피부미용과 탈모, 관절염부터 최근에는 코로나 등 감염 개선 연구까지 활용돼 왔다. 그렇다면 이 기술이 뇌 질환을 치료하는데도 효과가 있을까?
빛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다. 지구의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도 푸른 잎의 엽록체가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에너지원을 합성하기 때문이다. 신기한 사실은 엽록체뿐 아니라 동물의 세포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라는 에너지 발전소 또한 근적외선 파장대역의 빛에 반응해 산소호흡이 활성화되고 에너지 합성을 한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파킨슨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나 뇌졸중, 우울증 등 증상이나 발병 기전이 상이해 보이는 뇌 질환은 공통적으로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합성 장애로부터 시작된다.
독성 물질의 축적으로 미토콘드리아가 숨을 못 쉬면 퇴행성 뇌질환으로 혈액순환이 막혀서 숨을 못 쉬고 뇌졸중(腦卒中)으로 이어진다. 염증이나 영양소 결핍, 스트레스 등으로 숨을 못 쉬면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가 제대로 숨쉬게 해 에너지 생합성을 회복시켜야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이는 근적외선 빛이 다양한 질환으로부터 뇌 건강을 회복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실제 LED를 통한 근적외선 자극 연구를 보면, 뇌졸중 발생 후 기능 회복,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 개선, PTSD나 우울증, 불안증 등의 회복이 놀랍고 흥미롭게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표준화된 치료법이 없고 질환에 따라 손상되는 부위나 뇌 네트워크가 다르며 근적외선을 자극하는 부위나 전달 방식에 따라서도 뇌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최선의 방법은 뇌를 스캔해 각자의 뇌파 특성과 뇌기능 상태를 정확히 분석하고, 맞춤형으로 자극을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이 뇌 스캔과 근적외선 LED광자극이 가능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약 5분 동안 뇌를 스캔한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하면 인공지능(AI)이 뇌 기능 상태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개개인에게 최적의 근적외선 광자극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퇴행성 뇌질환이나 뇌졸중 등 꾸준한 재활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굳이 병원에 매번 방문하지 않아도 재택에서 디지털 기기를 통해 뇌를 스캔하고 치료할 수 있다. AI가 분석한 결과를 다른 공간에 있는 의사와 보호자가 온라인상에서 공유하고 상담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기술만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할 때다.